a. J i N J i N
소주 5잔
징징_
2009. 9. 2. 23:26
야근 아닌 야근을 하고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하니 9시가 되기 5분쯤 남았다.
화요일, 수요일 이틀 간 정신이 없다.
난생처음 부사수.라는 타이틀의 사람을 만났는데 좀 더 잘해주고 싶고,
내 인생의 유일한 사수인 통언니님이 나에게 해주신 것의 반이라도, 흉내내고 싶었는데...
회사일은 늘 그렇듯이 없다가도 한번 몰려올 때는 쓰나미처럼 백 개씩 뭉쳐다니니까-
짜증에 울컥 치미는 이놈의 성질 죽이며 얌전한 척 일 쳐내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열정과 능력을 모두 갖춘 부사수님은 꼴딱꼴딱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더더더 마음이 급하고 정신이 없었다.
아, 나는 과연 빨리 배우고 싶어요" 많이 가르쳐주세요"라며 두 눈을 반짝이는 그녀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줄 수 있는걸까-
요즈음의 나는 안개속을 헤매는 것 같은 기분인데.
재충전이 필요하다며 쉬고싶다는 나인데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아파트의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오니
9시가 되기 5분쯤 남았다.
며칠내내 얼굴에 피.곤.이라고 써붙이고 있던 나모키는 내가 오자마자 잠이 들고
나는 늦은 저녁을 먹는다.
엄마가 무쳐준 오이지가 있으니 저녁밥은 생각만 해도 신난다.
흑미를 조금 섞어 지어놓은 밥에 오이지를 꺼낸다.
김치나 오이지, 짱아치처럼 나모키가 먹지 않은 음식은
과연 혼자 있을때 먹어야 맛있다.
어쩐지 이런 음식들을 좋아하기는 커녕 냄새조차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는
물 말아서 오이지무침 척척 올려먹는 원초적이지만 너무나 큰 희열의 행위가
신나고 기쁘기는 커녕, 어쩐지 안그런척 하게되니 말이다.
밥을 푸고, 오이지무침을 꺼내고 아 맞아, 어제 편의점에서 사다놓은 풀무원 오뎅국이 있었다.
전자렌지에 3분 땡 돌려서 따끈따끈 모락모락 김이 나는 오뎅국을 보니까
와, 소주생각이 절로 나네-
주말에 생선굽고나서 후라이팬 냄새 없애느라 새로 딴 소주가 냉장고에 있었다.
하이얀 나무식탁에 밥그릇, 오이지 반찬통, 오뎅국을 놓고
2/3쯤 남은 소주병과 잔을 딱 꺼내놓으니까 내 눈에 비친 밥상모습이 그럴듯하다.
일단 빈 속이니까 밥을 적당히 먹고 오뎅국의 오뎅, 곤약, 무 등을 건져먹으며
혼자서 소주를 따라 마신다. 한 잔은 두 번에 나눠서 먹으면 딱 좋다.
그렇게 다섯잔, 소주 5잔. 투명한 액체를 투명한 잔에 쫄쫄쫄 따르는 기분이 제법 괜찮다.
겨우 소주 5잔에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3잔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4잔쯤에 아, 좋네- 하다가 마지막으로 5잔째를 마시고나니
아, 나 술 마셨구나 싶다. 맛있구나, 이 소주... 참 맛있다. 기분도 좋아지네-
언제나 술 마시면 찾아오는 극조증도
혼자서 오롯이 깨어있는 밤에는, 그래도 조금은 차분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여기저기 널부러져서 자고 있는 우리 고양들을 찾아 꽉 껴안아주고
내 잠옷원피스를 이불삼아 덮고 있는 나모키에게 이불찾아 덮어주고
오징어집 과자를 꺼내 와작와작 먹는다.
생각은 많아져 머리는 복잡하지만 그래도 내 가슴은, 기분이 좋다.
회사일, 나의 커리어, 사람들에 대해 묻어두었던 많은 생각과 고민들이
한순간 수면으로 퐝 떠올랐다가 휙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오징어집 과자를 다 집어먹을때까지 혼자서 가만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아지면 그때 미련없이 들어가 자야겠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 그건 내가 정말 취했다는 분명한 증거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