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복잡지끈

a. J i N J i N

by 징징_ 2009. 1. 29. 15:53

본문

나는 꽤 무던한 사람이다.
음, 눈물이 좀 많고 작은 일에도 많이 신나하긴 하지만
거꾸로 싫은 일이나 맘에 안드는 사람 때문에 침울해 하거나 우울해하는 일은 많지 않다.
즐거운 기분이라는 것이,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나의 생활과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그 힘을 믿기 때문에
나쁜 일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던하게 있으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더더욱, 내 속으로 파고드는 때가 많다.
말을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고, 불평하고 개탄해도 바뀌는 것이 없는데
넘치는 나의 말이 행여나 다른 실수나 오해를 불러 일으킬까봐
나는 비겁하지만 입을 닫고 눈을 감는다.

하지만 내 속은, 내 마음은 겉으로 보는 것 만큼 평온하지는 않다.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 부르르와 울컥을 잘 하는 사람이다.
불의를 보면 몸은 잘 참지만 마음이 벌컥벌컥, 입이 금세 거칠어지는 사람이다.
그걸 속으로 다 누르고 담아두려고 하니 병이 날 것 같다.
이미 어쩌면 나는 병이 나서 마음 속이 사막처럼 변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래를 씹는 것처럼 텁텁하고 쓰다.



나는 스트레스에 꽤 강한 사람이다.
주변 환경에 예민하지만, 그만큼 빨리 적응하는 편이다.
그것은 내가 딱히 좋은 사람이거나 현명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래야, 받아들이고 익숙해져야 내가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편하기 위해서이다.

요즘은 크고 작은, 그리고 출처가 다양한 스트레스가 꽤 많다.
그래서 무던하게 눌러버릴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버렸다.
이런 나의 마음이 알게모르게 겉으로 스며나오는지
근래에 만지는 사진마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새는 부드러우면서도 따뜻한 사진을 만지려고 노력하는데
결과물은 항상 시퍼렁딩딩 차갑고 메마른 사진, 매번 실망이다.
이렇게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고 몸은 몸대로 늘어져 살만 쪄가는
생활의 카오스 상태로 몇달째 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사였는데, 이제 올해 4월이면 벌써 전세계약 만기가 되는거다.
아, 벌써 결혼한 지 2년이 다 되어가는거네. 순간 깨닫자마자, 뱃속이 찡!한 이 느낌-
우리가 입주할 때 막 새로 지은 집이었고 벽지도 화이트 몰딩도 밝은 나무, 바닥도 원목에
친정으로나 뻑 하면 가는 홍대 쪽으로나 혹은 강남쪽으로나 서울 어디를 가든지 접근성 좋은 위치에
마트들도 가깝고 길만 건너면 바로 한강공원에 참 여러모로 괜찮은 집이었다.
매년 팡팡 뛰는 이 곳 땅값에 몇년 후에 주어질 새 아파트 입주딱지를 바라는 돈 많은 투자자들이 몰려
날림공사로 대충 짓는 바람에 단열공사를 제대로 안해서
겨울만 되면 집과 바깥의 심한 온도차로 인해 습기가 차고, 순간 방심하면 곰팡이가 기웃거린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튼튼체질 나와는 달리 아토피도 있고 호흡기가 약한 나모키가 살기에는 확실히 안좋은 환경이다.

게다가 식구도 둘이나 늘고 살림도 몇 배는 늘어서 집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
그냥 오래오래 살면 좋겠다는 주인아저씨 말에 우리는 2년을 더 살 것인가 이사를 갈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은 결심했다,새 집을 찾기로-!

그때부터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동네로 가야할 것 인지,
예산은 얼마나 될 것인지,
대출을 받을 것인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제때 나가줄 것인지,
집 보러 오면 고냥들은 괜찮을 것인지,
이사나가는 날짜랑 들어가는 날짜는 잘 맞을 것인지,
때마침 터져준 천장 누수공사는 어떻게 될런지,
모든 걱정과 고민이 동시에 두둥 떠오르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 혹은 무신경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는
혼자서 머릿속은 복잡해서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아까 나모키가 그런다.
'우리집 나갔대-'

응?
집 나갔다구. 어제 보러 온 그 사람들-
어, 한 팀 보러 왔는데 바로 나갔네.
응.
아, 빨리 나갔네.
그치?
집 구하자
그래

고민이 한가지 해결되고
한가지 고민이 더 생겼다.

집 빨리 구할 수 있을까?

집 빨리 안 나갈까봐, 전세금 제때 못 받을까봐 걱정했는데 한시름 놨다.
한시름 놓자마자 또 다시 마음이 급해져서 사무실에 앉아서도 마음은 붕붕 뜬다.



나는 어쩌면
진짜 못말리는 인간이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