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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드상도의 바깥 아이들

c. My BeBe

by 징징_ 2012. 7. 3.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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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커다란 사료통이 두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메종드상도 바깥에 사는 아이들을 위한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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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쯤 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무언가 쥐약을 먹은건지, 외상 없이 쓰러져있는 아기 고양이를 발견했던 날.
그리고 얄팍한 걱정만 할 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비겁하게 외면했던 날,
결국 다음 날 아침 죽어있는 그 아기 고양이를 만났다.

(점박이 아기 고양이의 죽음 http://www.nameok.net/172)

미안함과 죄책감,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등이 뒤범벅되어 어쩔 줄 몰라하던 중,
죽은 아기 고양이 옆에 웅크리고 앉은 까망 아기 고양이를 발견했다.
이전에 봤던 고양이다. 죽은 아이와 이 까망 아이는 형제였다.
어미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세 마리 형제 중에서 둘만 남았는데
이제 단 하나의 의지할 곳마저 잃은 아주아주 작은 아기 고양이는 이제 혼자 남았다.
그리고 나모키와 나는 그 녀석을 까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 손바닥 위에 올라올 만큼 작은 그 녀석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날, 까망이와 눈을 마주친 이후로
나모키와 나는, 이전에는 가끔씩 생각날 때 마다 그냥 놓아주던 길냥이들 밥을
매일매일 챙기기 시작했다. 아기 까망이를 위해서였다.
또 죽은 아기 고양이에게 사죄하는 마음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마음 속 죄책감을 없애고 싶은 이기적인 생각이 제일 첫 번째였을지도 모른다.

아파트 건물 옆 수풀 속이나, 자동차 밑에 웅크리고 앉은 까망이를 발견하면
'쭈쭈쭈쭈~'하고 부르면서 사료를 가져다 주었다.

처음에는 잔뜩 경계하던 까망이도 조금씩 우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힐끔 힐끔 눈치를 보면서 가져다 주는 사료를 먹더니,
보이지 않아도 '쭈쭈쭈쭈~'하고 부르면 어디선가 스르르 나타나고,
퇴근하는 길 발소리를 알아듣고 나와서는 '냐~'하고 먼저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 차 소리를 알아듣고, 뛰어와서 아는 척을 하고
저 아파트 언덕 밑에서 마주친 날이면 강아지 마냥 깡총깡총 뛰어서 우리집 앞까지 함께 온다.

사료를 가져다 주면, 먹지도 않고 한참동안 부비부비 애교를 부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궁디팡팡 해주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렇게 까망이는 메종드상도 바깥에 사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그동안 까망이는 새끼도 낳았다.
작년 이맘때쯤, 회색 턱시도를 입은 아가와 까망 점박이 아가 둘을 쫄랑쫄랑 데리고 다녔다.
항상 까망이와 함께 다니던 두 아기 고양이는 까망 점박이 아가만 남았고,
그리고 이내 둘 다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
그저 까망이는 또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 또 다시 찾아온 봄, 한동안 보이지 않던 까망이는 배가 불룩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아무래도 또 아이를 가진 것 같았다. 사료랑 물은 물론이고, 캔도 간식도 수시로 챙겨주었다.






그리고 까망이는 치즈태비, 젖소, 고등어무늬, 그리고 삼색이까지 네 아기를 낳았다.
지금 매일 만나는 아이는 치즈태비, 젖소 그리고 고등어무늬-
삼색이 아가는 어딘가에 잘 있을거라고 믿고 있다.





재활용쓰레기를 모으는 공터를 주 영역으로 생활하는 까망이의 식구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똥꼬발랄 아깽이들은
까망이 엄마와 그리고 카오스 아줌마의 보호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까망이와 비슷한 나이로 카오스와 삼색이가 있다.
셋은 항상 같이 다니는데, 까망이가 새끼를 낳은 뒤로 카오스가 유모 역할을 해주고 있다.

때때로 밥도, 애기도 팽개치고 달려와
다리 사이를 오가면 부비고 비비고 부비고 비비고 부비고 비비는 까망이 대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애기들을 지키는 멋진 내니, 카오스-
노란 얼굴 반, 까만 얼굴 반의 카오스는 삐쩍 마른, 볼품 없는 아기였는데 이렇게 의젓하게 컸다.





그리고 동글동글한 얼굴, 둥실둥실한 몸매의 삼색이-
삼색이는 구름이처럼 작고 예쁜 목소리를 가졌다.
소심해서 아직 까망이처럼 우리한테 저돌적으로 달려와서 부비적거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눈뽀뽀를 한껏 해주면서 차나, 보도블럭에 부비며 발라당거린다.





TNR을 한 삼색이의 귀-
삼색이랑 카오스가 제일 친한 단짝이다.
항상 밥도 같이 먹고, 같이 다닌다.





그리고 우리 동 바로 앞을 주 생활영역으로 활동하는 얼큰이-
원래 까망이랑 삼색이랑 카오스의 영역이었는데
어느 날 나타난 얼큰이가 이곳을 차지했다.
한 동안 불쑥 나타난 흰둥이랑 신경전을 벌였는데, 무심한 듯 시크한 흰둥이와는 달리
얼큰이는 우리만 보면 어떻게 좀 해달라고 울고 난리, 밥 달라고 울고 난리-
너무 시끄러웠던 모양인지,
흰둥이는 이제 이곳이 아닌 재활용 모으는 공터에서 까망, 삼색, 카오스네랑 같이 노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얼큰이는 우리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마악 뛰어와서 밥 달라고 엄청 조르는데,
동네가 떠나가라 우는 바람에 민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느새 매일의 퇴근길, 얼큰이랑 못 만나면 허전하기 짝이 없다.
쭈쭈쭈쭈, 하고 불렀을 때 냐앙~ 하면서 불쑥 나타나면 너무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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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커다란 사료통이 두 개 있다.
그리고 커다란 사료통에 담긴 사료를 작은 통에 담아서 차에 싣고 다닌다.
매일 출근길, 혹은 퇴근길-
일곱의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며 밥을 먹인다.

눈뽀뽀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말로 대화를 하고, 궁디팡팡을 해주고, 뒤통수를 쓰다듬어주면서 밥을 먹인다.
그리고 사료 몇 알보다 더욱 큰 무언가를 받는다.



이렇게 삼년째......
이사는 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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